딸과 롯데월드에 당일치기로 다녀오기로 했다. 문제는 계획이었다. 아이랑 가는 놀이공원은 어른들끼리 갈 때와 다르다. 탈 수 있는 기구가 정해져 있고, 아이 체력은 오후가 되면 급격히 떨어지고, 점심·간식·화장실 타이밍을 놓치면 그날 하루가 통째로 무너진다. 검색으로 후기 몇 개를 읽다가, 이걸 한 번 ChatGPT에 통째로 맡겨보기로 했다. 결론부터 말하면, 첫 답은 그럴듯했지만 그대로는 쓸 수가 없었다. 그리고 그 이유가 이 글에서 하고 싶은 이야기다.
처음엔 그냥 통째로 물어봤다
첫 프롬프트는 이랬다. 별생각 없이, 아는 정보를 한 줄로 던졌다.
6세 여아 104cm 신장 그리고 성인과 롯데월드 6/12일 금요일에 갈껀데 탈 것들, 먹을거리, 볼거리, 몇시에 입장해야할지, 꿀팁등 알려줘
돌아온 답은 꽤 성실했다. 키 기준으로 탑승 가능한 기구와 어려운 대형 스릴기구를 갈라주고, 오픈런을 권하는 입장 시간, 오전에 몰아탈 인기 시설 목록까지 정리해줬다.

여기에 하루 일정표까지 붙여줬다. 표로 깔끔하게.

화면만 보면 “이 정도면 됐네” 싶다. 그런데 이 일정표를 들고 실제로 그날을 시뮬레이션해보니, 곳곳이 비어 있었다.
그럴듯했지만 실전에선 못 쓴 세 가지
첫 답의 문제는 정보가 틀렸다는 게 아니었다. 정보는 맞는데, 실행에 필요한 결정을 대신 내려주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구체적으로 세 군데가 비어 있었다.
첫째, 어떤 기구를 어떤 순서로 타야 하는지가 흐릿했다. “오전에 인기 놀이기구 집중”이라고만 되어 있지, 풍선비행을 먼저 탈지 회전목마를 먼저 탈지, 그 둘이 지도상 어디에 붙어 있어서 어떻게 도는 게 덜 걸어도 되는지는 없었다. 아이를 데리고 다니면 걷는 거리가 곧 체력이다.
둘째, 집에서 롯데월드까지 가는 경로와 시간대가 빠져 있었다. 몇 시에 나가야 퇴근·등교 정체를 피하는지, 돌아올 때 몇 시에 나서야 도로가 막히기 전인지는 사실 놀이기구만큼 중요한 변수인데, 첫 답은 공원 안 이야기만 했다.
셋째, 퍼레이드를 정확히 어디서 봐야 좋은 자리인지가 없었다. “퍼레이드·공연”이라고 일정에는 있는데, 아이를 목마 태우고 볼 만한 위치, 캐릭터랑 가까운 지점 같은 건 안 나왔다. 퍼레이드는 아이가 제일 좋아한 순간이었는데, 자리를 잘못 잡으면 뒤통수만 보다 끝난다.
정리하면, 첫 답은 “정보”는 줬지만 “조건”을 반영하지 않았다. 그리고 조건은 내가 말해주지 않으면 AI가 알 도리가 없는 것들이었다.
부족한 자리를 조건으로 채웠다
그래서 한 번에 끝내려던 걸 접고, 되물었다. 세 번 정도 나눠서, 빠진 조건을 하나씩 넣었다.
동선부터 손봤다. “탈 순서를 지도상 위치를 고려해서 덜 걷는 동선으로 다시 짜줘. 인기 어트랙션을 우선순위로 앞에 배치하고, 그걸 일정 시간에 반영해줘”라고 했다. 그제야 “무엇을 탈지”가 “언제, 어느 순서로 탈지”로 바뀌었다.
혼잡도 넣었다. “간식은 어디가 제일 몰리는지, 사람 적은 시간대에 먹으려면 몇 시가 좋은지 알려줘.” 점심을 11시 30분에 당겨 먹으라는 조언은 이 과정에서 나왔다. 대기 줄이 짧을 때 밥을 먹고, 사람 몰리는 시간엔 기구를 타라는 건 말로는 당연한데 첫 답엔 없던 조건이었다.
마지막으로 이동과 자리. 집에서 나가고 돌아오는 최적 시간대, 그리고 퍼레이드 명당 위치를 콕 집어달라고 했다. 회전목마 앞이 캐릭터와 가깝고 시야 확보가 쉽다는, 그날 실제로 도움이 된 정보가 여기서 나왔다.
이렇게 서너 번을 주고받고 나서야, 들고 다닐 수 있는 한 장짜리 계획이 나왔다. 마지막엔 그걸 이미지 한 장으로 뽑아달라고 했다.

참고로 이 이미지에는 원래 아이 나이·키, 사는 동네 같은 개인정보가 그대로 들어가 있었다. 공개용으로 쓰면서 그 부분은 전부 지우고 “미취학 아동”, “자택”, “근교”처럼 일반화했다. AI가 만들어준 결과물을 밖에 공유할 때 이 점검은 습관으로 두는 게 좋다. 특히 아이가 나오는 자료는 사는 지역과 동선이 함께 노출되기 쉬워서 한 번 더 봐야 한다.
처음부터 이렇게 물었으면 됐다
서너 번 되물은 끝에 깨달은 건, 결국 내가 채워 넣은 조건들을 처음부터 한꺼번에 줬으면 그 왕복이 필요 없었다는 것이다. 다음에 또 이런 계획을 짤 사람을 위해, 내가 헤맨 걸 반영한 완성형 프롬프트를 남긴다.
“미취학 아이(키 제한 있음)와 성인 한 명이 O월 O일 O요일에 [놀이공원]에 당일치기로 갑니다. 아래 조건을 모두 반영해서 하루 계획을 짜주세요.
1. 키 제한으로 탑승 가능한 기구만 고르고, 대형 스릴기구는 제외해줘.
2. 인기 어트랙션을 우선순위로 앞에 두고, 지도상 위치를 고려해 덜 걷는 동선으로 순서를 정해줘.
3. 대기 줄이 몰리는 시간을 피해 식사·간식 시간을 배치하고, 어디가 붐비는지도 알려줘.
4. 집([대략적 지역])에서 출발·귀가할 때 교통 정체를 피하는 시간대를 알려줘.
5. 퍼레이드나 공연은 아이가 보기 좋은 구체적인 관람 위치까지 짚어줘.
6. 결과는 시간대별 표로 정리하고, 마지막에 준비물 체크리스트를 붙여줘.
단, 대기시간·운영시간·퍼레이드 시각은 변동될 수 있으니 ‘공식 안내 확인 필요’라고 표시해줘.”
핵심은 여섯 개 조건이다. 탑승 기준, 우선순위와 동선, 혼잡 회피, 이동 시간대, 관람 위치, 그리고 출력 형식. 이 여섯 개 중 어느 하나라도 비면, AI는 그 자리를 “인기 놀이기구 집중” 같은 두루뭉술한 말로 메운다. 나들이 계획에서 AI 첫 답이 부실한 이유는 정보가 부족해서가 아니라, 내 상황의 조건이 프롬프트에 없어서다. 이건 계약서를 검토할 때 관점을 지정해야 질문이 달라지던 경험과도 같은 결이었다.
남는 한계와 주의할 점
한 가지는 분명히 해두고 싶다. AI가 짜준 계획은 출발점이지 확정된 사실이 아니다. 대기시간, 기구 운영 여부, 퍼레이드 시각, 심지어 키 제한 기준까지 현장 사정과 시즌에 따라 바뀐다. 그래서 마지막 프롬프트에 “공식 안내 확인 필요”를 표시하게 했고, 실제로도 탑승 기준과 공연 시간은 롯데월드 공식 안내로 한 번 더 확인하고 갔다. AI가 준 정보를 그대로 믿기보다 현장 기준과 대조하는 습관은, 낯선 주제를 조사할 때 출처를 검증하던 방식과 똑같이 필요하다.
또 하나, 결과물을 이미지로 만들 때는 개인정보를 꼭 걸러야 한다. AI로 이미지를 만들 때 텍스트가 그림 안에 그대로 박히기 때문에, 아이 정보나 거주지가 무심코 들어가기 쉽다. 공유 전에 한 번 더 확인하는 걸 권한다.
통째로 맡기지 말고, 조건을 주고 대화하라
결과만 놓고 보면 그날 롯데월드는 잘 다녀왔다. 아이는 퍼레이드를 제일 좋아했고, 오후 체력이 떨어지기 전에 인기 기구를 다 태운 덕에 큰 실랑이 없이 하루가 굴러갔다. 하지만 그 계획은 ChatGPT가 처음부터 완성해준 게 아니라, 내가 조건을 하나씩 채워 넣으며 함께 만든 것이었다.
AI에게 여행이나 나들이 계획을 맡길 때, “알아서 짜줘”는 그럴듯한 초안까지만 데려다준다. 거기서 쓸 만한 계획으로 넘어가는 건, 내 상황의 조건을 얼마나 구체적으로 말해주느냐에 달려 있다. 처음부터 완벽한 답을 기대하기보다, 빠진 조건을 짚어 되묻는 대화라고 생각하면, 놀이공원 하루든 다른 일정이든 훨씬 쓸 만한 결과가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