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 지식관리 시스템, AI에게 설계해달라고 했더니 제안의 절반을 거절했습니다

책을 많이 읽는 편입니다. 그런데 정작 문제는 다 읽고 난 다음이 아니라, 읽는 도중에 있었습니다.

어떤 문장을 보다가 문득 좋은 생각이 스칩니다. 그 자리에서 적어두지 않으면 다음 날이면 거의 사라져 있습니다.

그 순간의 생각을 나중에 콘텐츠 작업이나 결정에 다시 꺼내 쓰고 싶은데, 정작 남는 게 없었습니다.

그래서 이번에 Claude와 함께, 그 순간의 생각을 붙잡아두는 개인 지식관리 시스템을 하나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막상 만들어보니, 이 글의 진짜 내용은 “무엇을 넣었는가”가 아니라 “무엇을 넣지 않기로 했는가”였습니다.

처음엔 폴더를 다섯 개로 나눴다

처음 설계할 때는 당연하다는 듯이 폴더를 여러 개로 쪼갰습니다. 책 기록 폴더, 통찰 모음 폴더, 실천 항목 폴더, 참고 지식 폴더, 서평 폴더. 이렇게 다섯 갈래로 나눴습니다.

나중에 카테고리별로 찾기 편할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책을 몇 권 등록해보니 문제가 보였습니다. 다섯 개 폴더 중 서너 개는 파일이 딱 한 개뿐이거나 아예 비어 있었습니다. 폴더를 열어보면 구조가 아니라 그냥 빈 껍데기였습니다.

생각해보면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서랍을 아무리 잘게 나눠도 넣을 물건이 몇 개 안 되면 서랍 대부분은 그냥 비어 있게 됩니다.

저는 나중에 기록이 쌓이면 필요해질 거라고 예측하고 폴더부터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실제로 쌓이는 속도를 보니 달랐습니다. 책 한 권 기록하는 데 20분, 그것도 부업 시간인 밤 9시에서 11시 사이입니다. 파일 몇 개짜리 폴더는 그냥 찾기 기능으로 충분했습니다.

그래서 폴더를 두 개로 줄였습니다. 하나는 운영 규칙 폴더, 하나는 책 기록 파일 폴더입니다.

책 기록은 더 안 나누고 한 곳에 평평하게 모아두기로 했습니다. 책 한 권이 곧 파일 한 개입니다.

그 파일들을 정리해서 보여주는 목록은 나중에 명령 한 줄로 자동으로 만들기로 했습니다.

실제로 그 무렵 클로드에게 보낸 지시 중 하나가 이렇습니다.

“구조 불일치 통일시키고 과잉 폴더는 최적화 시켜서 통폐합해.”

개인 지식관리 시스템 스펙을 다듬으며 실제로 보낸 지시 목록 캡처

Claude가 제안했지만 제가 거절한 것들

폴더를 줄인 다음, 진짜 결정은 그 뒤에 있었습니다.

Claude는 개인 지식관리 시스템이라면 으레 들어갈 법한 기능 몇 가지를 제안했습니다. 저는 그중 절반 가까이를 거절했습니다.

먼저 나온 게 회수판정 필드였습니다. 어떤 책에서 뽑은 생각을 나중에 블로그 글이나 원고로 옮겨 썼는지 표시해두는 항목입니다. 얼핏 들으면 유용해 보입니다.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보니 이 시스템은 애초에 밖으로 꺼내 쓰라고 만든 게 아니었습니다.

제가 원한 건 그 생각을 제 안에 쌓아뒀다가 나중에 결정에 반영하는 것이지, 콘텐츠 소재로 회수하는 게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그 필드는 거절했습니다.

같은 이유로 책에서 얻은 생각에 “이건 나중에 콘텐츠 소재로 쓸 수 있음” 같은 태그를 다는 것도 거절했습니다.

그다음이 체크박스였습니다. 책을 읽고 “이걸 내 삶에 적용해보겠다”고 적은 항목 앞에 완료 체크박스를 넣자는 제안이었습니다. 이것도 거절했습니다.

이유는 단순합니다. 지식을 저장하고 생각을 정리해서 결정에 쓰려는 건데, 다시 체크하고 회수했는지 확인하는 절차까지 넣으면 그때부터는 또 하나의 할 일이 되어버립니다.

게다가 적어둔 항목 중에는 애초에 끝나는 시점이 없는 것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돈을 쓸 때 그게 정말 나에게 의미가 있는지부터 본다” 같은 다짐은 오늘 체크하고 끝날 일이 아니라 계속 곱씹을 태도에 가깝습니다.

이런 항목에 체크박스를 달면 매번 미완료로 남아서 은근히 마음에 걸립니다.

같은 시기에 보낸 지시에도 이렇게 적어뒀습니다. “To do 완결은 크게 의미가 없을 것 같다.” (위 캡처의 10번 항목)

마지막으로 회수율이나 완독률 같은 성과 지표도 거절했습니다.

이런 숫자를 넣기 시작하면 다음 책을 고를 때 “빨리 완독률을 올려야 하는데”라는 압박이 끼어들 것 같았습니다. 이 시스템은 성과를 재는 곳이 아니라 생각을 쌓아두는 곳이어야 했습니다.

결국 남긴 건 세 가지뿐이다

이렇게 걸러내고 나니 사람이 직접 적는 항목은 딱 세 가지만 남았습니다. 왜 지금 이 책을 골랐는지, 읽으면서 무엇을 느꼈는지, 그리고 여기서 내 삶에 무엇을 가져갈 것인지.

이 세 가지는 전부 제 문장 그대로 남기기로 했습니다. Claude가 이 세 항목을 대신 만들거나 의미를 바꾸지 않는다는 규칙도 함께 정했습니다.

검증도 마찬가지로 선을 그었습니다. 제가 책을 읽고 느낀 점은 검증 대상이 아닙니다.

어떤 용어를 제가 어떻게 받아들였는지는 그 자체가 기록의 목적입니다. Claude가 원문과 대조해서 맞다 틀리다를 판정할 일이 아닙니다.

검증이 필요한 곳은 딱 하나, 저자가 실제로 주장한 내용을 Claude가 요약하는 부분뿐입니다. 원문을 확인할 수 있을 때만 쓰고, 확인이 안 되면 그 칸은 비워둡니다.

규칙을 정하고 나서 원칙을 하나 더 세웠습니다. 나중에 이 규칙과 실제 기록이 부딪히면, 규칙이 아니라 기록이 이깁니다.

시스템은 제 생각을 담는 그릇일 뿐이지, 제 생각을 규칙에 맞춰 고치는 도구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9권을 기록해보니

지금까지 아홉 권을 이 시스템에 기록했습니다. 실제로 콘텐츠 작업에 많은 도움이 됐고, 지금도 계속 나아지고 있습니다.

다른 사람이 몇 년, 몇십 년 걸려 얻은 생각을 책 한 권 값으로 가져올 수 있다는 걸 다시 한번 느꼈습니다.

지금 이 시스템의 목록을 뽑아보면 이렇습니다. 카테고리 분포는 사업·마케팅 3권, 자기계발 2권, AI·기술 2권, 돈·투자·건강 각 1권으로 마케팅과 AI 쪽에 쏠려 있습니다.

책 제목은 이 시스템의 성격상 본문에도, 아래 캡처에도 넣지 않고 가렸습니다.

개인 독서 기록 시스템 실제 목록 캡처, 책 제목은 전부 마스킹

다만 아직 검증하지 못한 부분도 있습니다. 반복해서 나타나는 원칙이 있는지 분기마다 한 번씩 모아보기로 했는데, 아직 한 번도 못 해봤습니다.

첫 회고는 다음 분기 초에나 해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래서 지금 이 시스템이 정말 “몇 년 뒤 생각의 변화를 돌아볼 수 있는가”까지는 아직 답하지 못했습니다.

이건 시간이 더 지나야 알 수 있는 부분이라 솔직하게 남겨둡니다.

비슷한 걸 만든다면 물어볼 질문 세 가지

AI에게 개인 기록 시스템을 설계해달라고 하면, AI는 대체로 넣을 수 있는 기능을 다 넣으려고 합니다.

그래서 저는 새 항목이 제안될 때마다 스스로 세 가지를 물어보기로 했습니다.

이건 제가 쓸 도구인가, 아니면 관리해야 할 숙제가 하나 늘어나는 것인가.

이 항목이 없으면 정말 안 되는가, 아니면 있으면 그럴듯해 보이는 것뿐인가.

그리고 이 항목은 언젠가 끝나는 일인가, 아니면 원래 끝이 없는 생각인가.

이 세 질문 중 하나라도 걸리면 저는 그 기능을 넣지 않았습니다.

지금 읽고 있는 책이 있다면, 오늘 느낀 점 딱 한 줄만 일기처럼 적어보시길 권합니다. 완벽한 양식은 필요 없습니다.

그렇게 몇 줄이 모이면 AI에게 그 줄들을 보여주고 공통으로 반복되는 게 있는지 물어보세요. 거기서부터 시작하면 됩니다.

무엇을 넣을지보다 무엇을 넣지 않을지를 먼저 정하는 것. 오래 쓰는 개인 시스템은 그 결정에서 갈리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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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부 참고: Personal knowledge management (Wikipedia) — 개인이 지식을 수집·정리·활용하는 방법론 전반에 대한 배경 설명

Richard

AI 도구를 실제 업무와 생활에 직접 써보고, 통한 것과 통하지 않은 것을 그대로 기록합니다. 이 글에 실린 프롬프트와 결과 화면은 모두 직접 테스트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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